2023 트렌드 전망 서적 집중 분석…한국 사회에 흐르는 공통된 키워드는 ‘다변화·소비 절벽·취향’
매년 연말이 되면 서점에서는 다음 해를 전망하는 책들이 쏟아진다. 그중에서도 트렌드를 전망하는 책들은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특정 직업군이나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찾아 읽기 때문이다.
막상 읽어 보면 아주 특별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올해 소셜 미디어나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단어나 흐름의 이유를 분석하고 합성해 작명하고 트렌드로 정의한다. 최근에는 이 ‘트렌드’를 카드 지출이나 소셜 미디어 언급량 등 데이터로 뒷받침하는 추세다.
트렌드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회적 현상이 쌓이고 쌓여 미래를 엿보는 이정표가 된다. 쏟아지는 트렌드 전망 책들이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는 이유다. 정의한 단어만 다를 뿐 안에 담긴 현상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2023년의 트렌드를 전망하는 책들의 공통적인 키워드를 뽑았다.
트렌드 전망 책의 ‘바이블’ 격인 트렌드코리아 2023의 첫 키워드는 ‘평균 실종’이다. 무난한 상품, 평범한 삶, 보통의 의견은 사라진 시대다. 일반적인 소비 패턴은 평균인 중앙이 제일 많고 멀어질수록 빈도가 줄어드는 완만한 종 모양이다. 하지만 사회 양극화가 심화하고 더 나아가 취향이 다변화되는 ‘N극화’가 도래하면서 이제 시장의 ‘전형성’이 사라졌다.
소득·소비뿐만 아니라 사회·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평균이 실종되고 있는 것이다. 평균의 기준이 무의미해지면서 대체 불가능한 탁월함·차별화·다양성이 필요해졌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사람들의 취향이 너무 달라 평균을 내는 게 무의미하다”며 “각자 핵심 역량과 타깃을 분명히 해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특정 사람들이나 특정 경향을 하나로 묶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는 다른 책에도 꾸준히 등장한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지은 ‘Z세대 트렌드 2023’에서도 비슷한 스토리가 나온다. 이 책의 서문에는 ‘트렌드가 없는 게 트렌드’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이 책이 첫 트렌드 키워드를 ‘하이퍼 퍼스낼리티(초개인화)’로 정한 이유다. ‘대세’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소위 ‘국민템’과 같은 것들이 점점 희소해진다고 주장한다. 책에서는 ‘이 때문에 최근 들어 캐릭터를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고 세계관이 확장되는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라는 단어가 지긋지긋하다는 의견도 많다. 이들의 세대 범위가 너무 넓고 초개인화된 만큼 ‘MZ’로 묶어 바라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전문 기업 바이브컴퍼니가 집필한 책 ‘2023 트렌드 노트’에서는 이런 이유로 젊은 세대를 ‘MZ’나 ‘청년’이 아닌 ‘독립된 1인’으로 칭한다.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도대체 ‘MZ세대’는 누구인가? 트렌드 리더? 취준생? 사회초년생? 주택 복지 대상인 청년? 정작 본인들은 ‘나랑 10살도 넘게 차이 나는 40살도 MZ라던데, 서로 말이 안 통한다’며 MZ라는 용어 자체를 질색한다.” MZ라는 평균으로 묶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1인으로 새로운 소비 주체를 정의해야 된다는 말이다.
평균이 실종된 시대는 불과 5년 전과 비교해도 뚜렷한 차이가 있다. 2017년과 2018년 발간된 트렌드 전망서에는 ‘노멀 크러시’라는 키워드가 대세로 등장했다. 노멀 크러시는 한마디로 ‘평균을 동경하는 삶’이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평범하게’, ‘남들만큼’ 사는 걸 꿈꾸는 시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공이나 취향의 ‘기준’이 사라지고 개인의 가치에 따라 사는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현상이다.
‘플렉스 끝, 스퀴즈 시작.’ 한경비즈니스가 올해 7월 발간한 커버스토리 제목이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로 마른 지갑을 쥐어짜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올해 주식·암호화폐·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내년에는 절약이 아닌 ‘소비 단절’까지도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의 ‘라이프 트렌드 2023’은 내년 키워드로 ‘무지출’에 주목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하고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고 화장품은 무료 샘플을 최대한 활용하는 등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하기도 했다.
김 소장은 “청년 세대는 이를 놀이로 만든다. 얼마나 오래 무지출로 살 수 있을지를 공유하면서 즐긴다. 이를 ‘과시적 비소비’라고 한다”고 분석했다.
‘Z세대 트렌드 2023’에서도 인생을 즐기면서 살자며 소비를 부추긴 욜로에 대한 의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20대가 욜로를 추구하는 경향’이 2017년 75.6%에서 2021년 55.2%로 감소했다는 트렌드모니터의 조사를 근거로 들었다.
이제는 욜로 대신 하루하루를 부지런히 또 열심히 살자는 ‘갓생’이 트렌드가 됐다. 최근에는 2030세대가 소비를 통한 즉각적이고 일시적인 만족 대신 삶의 질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경험의 깊이는 깊어지는 소비를 추구한다는 분석이다.
‘2023 트렌드 노트’는 이 같은 소비 경향을 새로운 경제 감각이라고 정의했다. 또 자신의 가치에 따라 50만원을 쓰고도 비싸지 않다고 말하는 ‘동경의 소비’, 소비하면서 행복을 논하는 ‘사랑의 소비’, 1만원 미만의 금액도 아깝다고 표현하는 ‘필요의 소비’로 소비 패턴을 구분했다.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와 ‘갓생’ 사이를 왕복하는 젊은 세대를 위해 두 가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나를 둘러싼 현실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돈이 나를 지배하지 않고 내가 돈을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이다.
지난 몇 년간 가장 중요한 단어였던 ‘취향’과 ‘콘셉트’는 여전히 시장을 관통하는 가치다. ‘트렌드코리아 2023’에서는 이를 ‘디깅 모멘텀’이라고 정의했다. 채광이나 채굴을 뜻하는 ‘디깅’처럼 자신의 취향에 맞는 한 분야나 좋아하는 일을 깊이 파고드는 소비 방식이다.
책은 디깅을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눴다. △몰입하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 콘셉트에 열중하는 콘셉트형 △같은 대상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몰두의 정도를 높이는 관계형 △특정 물건이나 경험의 수집을 통해 만족과 과시를 추구하는 수집형이다. 디깅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취미·키덜트(kid+adult) 등 관련 산업도 함께 크고 있다고 분석했다.
‘Z세대 트렌드 2023’에서도 ‘디깅 소비’에 주목했다. 단순히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위스키와 와인 등 고가의 주류 소비가 늘어난 현상이 대표적이다. 와인과 위스키 등 프리미엄 주류 소비가 늘어나는 이유는 종류와 역사, 음용법 문화 등을 깊이 탐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는 “Z세대에게 고급 문화를 공부하고 경험하는 행위는 좋은 소비”라며 “배움이야말로 자기 안에 축적되는 가치 있는 소비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0/0000062941?cds=news_media_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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