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 흥행 장담 못해…하락세 지속될 듯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오른쪽으로 노후화된 여의도 아파트 단지들이 눈에 띈다. 목화아파트를 시작으로 삼부, 장미, 대교아파트를 지나 시범아파트가 위치했다. 시범아파트는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1971년 준공해 현재 최고층이 13층이다.
노후화도 문제지만 주변 경관과 비교하면 조화롭지가 않다. 여의도 노후 아파트 단지 북서쪽으로는 333m짜리 오피스 타워인 ‘파크원’, 남동쪽에는 250m 높이 ‘63빌딩’이 자리 잡았다. 여의도는 진작부터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금융 중심지로 성장했음에도 정작 스카이라인은 딴판이다. 시범아파트처럼 노후하면서도 낮은 건물들로 인해 홍콩 같은 매력적 분위기를 자아내지 못했다. 서울시가 ‘35층 룰’ 폐지를 결정한 또 다른 이유다. 시범아파트는 이제 65층으로 재탄생해 63빌딩·파크원 등과 어우러진 ‘U’자형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게 된다.
다만 35층 규제가 폐지됐음에도 아직까지 시장 반응은 미지근하다. 금리 인상 여파로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재건축 호재가 약발을 받지 못하는 모습이다. 여의도 시범아파트 전용 156㎡ 매매가는 지난해 10월 35억원에서 올 8월 32억원으로 3억원 떨어졌다. 여의도동 A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시범아파트의 경우 층수 규제 완화 이후에도 매매 가격을 살짝 낮춰 내놓는 집주인도 있다”며 “그럼에도 매수 문의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아파트 높이를 35층으로 제한하는 이른바 ‘35층 룰’이 풀리면서 향후 서울 재건축 시장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일괄적인 높이 규제가 해제되면서 전반적으로 위축된 재건축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넣을 것으로 기대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등 규제가 여전해 층수 완화만으로는 침체된 시장이 회복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서울시가 35층 규제를 풀었지만 재건축 시장 한파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사진은 여의도 아파트 전경. (연합뉴스)▶초고층 재건축 사업성 있나
▷용적률 인센티브 없으면 사업성 의문
35층 규제가 폐지됐다고 해도 재건축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층수만 높인다고 해서 재건축 사업성이 곧바로 높아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35층 규제를 폐지하면서도 용적률은 기존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용적률은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 연면적 비율이다. 별도의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지 않는다면 당장 층수를 높인다고 해도 지을 수 있는 가구 수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물론 층수를 높이면 건물이 슬림해지고 단지 내 지상 공간이 넓어지면서 주거환경이 쾌적해지는 효과는 있다. 고층에서 한강, 남산 조망권을 누릴 수 있는 만큼 지역 랜드마크로 탈바꿈해 단지 가치가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일반분양 물량 증가로 이어지거나 사업성이 좋아지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용적률이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건물 높이만 올리면 건설비용만 더 늘어난다. 초고층 공사비는 보통 일반 건축보다 2~3배 더 들어가는 만큼 당장 사업성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만약 건물 높이만 높아지고 동간 거리가 그대로라면 일조권 침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사업 기간이 오래 소요되는 점도 무시 못할 부담이다. 68층 재건축을 추진하는 이촌 한강맨션의 경우 기존 35층 재건축보다 33층을 더 올려야 해 공사 기간이 3~4년가량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초고층으로 완공된 재건축 단지는 향후 추가 재건축 기회가 사라져 세월이 흐르면 슬럼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용적률을 함께 높여 사업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건물 높이가 높아질수록 공사비가 더 들 수 있다”며 “층수 규제 완화와 함께 용적률을 높이기 위한 기부채납 기준 등을 어떻게 정할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전진단 완화됐지만…
▷재건축 규제보다 무서운 금리 인상
그래서일까. 사실 35층 규제 폐지는 재건축 시장이 손꼽아 기다려온 초특급 호재다. 이전 같으면 시장이 들썩이겠지만 한파를 맞은 부동산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는 35층 규제가 풀리는 것을 환영하면서도 향후 사업이 활발히 진행될지는 의문을 표한다. 오세훈 시장이 지난 3월부터 35층 규제 폐지를 언급해 이미 시장에 호재가 반영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금리 인상, 거래 절벽, 미분양 급증 등의 여파로 전반적인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점이 변수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11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값은 0.05%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반 아파트는 0.05% 하락했고, 재건축 아파트 역시 0.04% 내렸다. 서울 주요 단지 재건축 사업이 속도를 내고 관련 규제가 완화되고 있음에도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35층 규제 완화에 직접적인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 용산, 여의도, 강남 일대는 이 같은 분위기가 뚜렷하게 감지된다. 용산구 이촌동 B공인중개소 관계자는 “35층 규제가 폐지됐지만 큰 변화는 없다”며 “사실 층수가 문제가 아니라 대출 금리 부담 때문에 매수 문의 자체가 없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대치동 역시 마찬가지다. 49층 재건축을 추진하는 대치 은마아파트 전용 76㎡는 12월 3일 18억5000만원에 실거래됐다. 11월 매매가(17억7000만원)보다 소폭 오르기는 했지만 1년 전인 지난해 11월 실거래가(26억3500만원)와 비교하면 한참 떨어진 금액이다.
전문가들은 금리 불확실성, 주택 시장 침체에다 여전히 남아 있는 재건축 규제 여파로 35층 폐지가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대규모 재건축 단지일수록 사업비가 중요하다. 지속적인 금리 인상, 원자재 가격 상승은 재건축 사업성 자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여기에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분양가상한제 등 재건축 규제가 여전해 시장 반응이 차갑다. 구조안전성 점수 비중이 전체의 50%에서 30%로 떨어지고, 지자체 판단에 따라 2차 정밀안전진단인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를 생략하기로 해 안전진단 문턱이 낮아졌지만 갈 길이 멀다.
일반분양이 성공해야 조합원 분담금을 줄일 수 있지만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최근 분양한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은 3695가구 모집에 1만3647명이 신청해 1순위 청약 경쟁률이 평균 3.7 대 1에 그쳤다. 올해 서울에서 분양한 15개 단지의 평균 청약 경쟁률(21.5 대 1)을 크게 밑돈다. 오랜만에 나온 서울 핵심 입지 청약이라 ‘10만 청약설’까지 나왔지만 고분양가 논란, 대출 부담으로 기대보다 낮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재건축 시장 활성화,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건축 시장만큼은 문재인정부 이전 수준의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주택 가격이 조정받는 상황에서 원자잿값 인상 등으로 공사비는 더욱 높아져 재건축 사업성이 악화되고 있다”며 “재건축 사업이 하루빨리 활성화돼야 향후 주택 공급 부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지금 공급을 늦추면 몇 년 후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4/0000078858?cds=news_media_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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