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7억원(2020년) → 5824억원(2021년) → 7042억원(2022년).
일본 SPA 브랜드 유니클로의 한국 매출(법인명 에프알엘코리아, 회계연도 매년 8월 31일 기준) 추이다. 2019년만 해도 유니클로 한국 매출액은 1조3780억원에 달했다. 2019년 여름,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가 이뤄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른바 ‘사지 않고 가지 않겠다’는 ‘노 재팬(일본 불매) 운동’이 들끓었다. 2021년 바닥을 친 유니클로는 그러나 지난해 20% 가까이 성장했다. 지난 3년여 동안 매장 60곳의 문을 닫았음을 감안하면 매장당 매출액은 오히려 반등하는 모양새다.
유통업계는 유니클로 실적 반등과 관련, 부정적인 이슈나 여론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고 꾸준하게 제품과 성능만을 보고 이용하는 소비자, 일명 ‘샤이(쑥스) 고객’이 움직였다고 분석한다.
샤이 고객이 뭐길래
샤이 고객은 말 그대로 그 제품을 쓴다고 겉으로 드러내고 표현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꾸준히 해당 브랜드를 구매하는 충성도 높은 고객을 뜻한다. 학계에서 주로 쓰이던 이 개념은 의외로 대형 정치 이벤트 때 전국적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샤이 고객은 박근혜 전 대통령 대선 당선 때 특히 주목받았다. 당시 사전 여론조사 대비 큰 표 차이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그러자 야권에서 패인 분석에 나섰다. 이때 나온 개념이 ‘뱅뱅 청바지 이론’이다. 대놓고 뱅뱅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실제 뱅뱅어패럴 매출은 매년 청바지 브랜드 최상위권 수준(연 800억~1000억원)을 기록한다. 그 이유는 샤이 고객이 많아서라는 분석이다. 박 전 후보가 대승을 거둔 이유도 뱅뱅 청바지 고객처럼 ‘샤이 보수’가 움직여서라는 주장이었다. 이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샤이’ 유권자 분석은 선거철 단골 소재가 됐다.
뱅뱅 청바지 외에도 시중에서 ‘올드 브랜드’로 분류되지만 실제 매출액은 굳건한 브랜드를 설명할 때 샤이 고객을 비결 1순위로 꼽는다. 신성통상이 보유하고 있는 지오지아, 올젠, 앤드지 등 남성복 라인이 지난해 매출액 4000억원을 넘겼을 정도로 선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학계에서는 그래서 이들을 코어(핵심) 고객으로 분류하고 ‘귀하신 몸’으로 여겨야 한다는 분위기다.
지난 2019년 7월 5일 유니클로 서울 롯데월드점 매장. ‘노 재팬 운동’의 여파로 방문객이 대폭 줄어든 모습이다.
(매경DB)샤이 고객 그들은 누구?
이들 특성에 대한 분석도 다양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샤이 고객에 대해 “자신이 지닌 성향을 드러냈을 때 받게 되는 불이익이나 불편함 등을 피하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다”며 “이는 역으로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고 많이 의식하는 사람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조용한 소비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시각도 있다. 어쩌면 이들은 자존심, 자존감이 아주 높은 고객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만 해도 ‘보복 소비’ 여파로 과시성 소비가 대세였다. 명품 브랜드 역시 이런 트렌드에 따라 로고를 크게 만들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과감한 디자인 제품을 많이 내놨다. 이 와중에 진짜 부자 혹은 종전 명품 소비자들은 이들과 차별화를 꾀하려 했다. 제품 자체는 비싸지만 로고는 찾아볼 수 없는 패션 스타일을 선호하게 된 것. 일명 ‘스텔스 럭셔리’다. 미국 시사잡지 타임은 올해 4월 ‘스텔스 럭셔리가 주목받는 이유’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다루기도 했다. 잡지는 이 같은 현상을 ‘은밀한 부’ 또는 ‘조용한 사치’를 지향하는 소비자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노정석 사이몬쿠처앤파트너스 한국대표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착장이지만 브랜드를 잘 아는 이들끼리는 서로 바로 알아볼 수 있는 명품 가방, 의류를 선호하는 현상”이라며 “이는 그만큼 이쪽 시장을 잘 알면서 소비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은밀하게 과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레트로(복고주의)’ 소비 현상을 사실상 떠받쳐주는 것도 실은 샤이 고객 담당이라는 분석도 흥미롭다. 유통가는 ‘올드 브랜드의 귀환’ 혹은 옛날 스타일의 제품이 재출시되는 현상을 MZ세대 덕분으로 본다. 이들이 신기하고 재밌게 접근해서 유행이 된다는 시선이다. 하지만 이런 제품의 실제 소비자는 과거 기억을 그리워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중장년층인 경우가 많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 교수는 이를 “세대효과경제가 발생했다”는 말로 설명한다. ‘세대효과경제’란 젊은 시절에 겪었던 경험에 의해 소비 성향이 결정되는 것을 뜻하는 경제 용어다. ‘올드하다’는 주변 시선이 신경 쓰여 소비를 망설이던 샤이 고객이 ‘레트로’ 게임·영화·패션 등의 제품이 나오자 조용히 주력 소비자가 된다는 얘기다. 실제 2000년대 초반에 인기를 끌었던 PC 게임 ‘열혈강호 온라인’이 코로나19 창궐 이후 다시 활성화된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기업 특명 “샤이 고객을 잡아라”
전략(1) ‘호객 행위’ NO…접점을 다르게
일부 기업은 이미 ‘샤이 고객이 실은 핵심 고객’이라는 인식 아래 다양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타인 앞에서 소비하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는, 말 그대로 샤이한 고객을 잡기 위해 기존 오프라인 판매 방식에 변화를 준 사례가 대표적이다.
통상 오프라인 매장에 들어서면 매장 직원이 말을 걸거나 제품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샤이 고객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 사용해본 제품은 반드시 구매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결국 조용히 발길을 끊는 사례도 많다.
이런 고객 성향을 간파하고 색다른 접근을 한 헬스케어 가전 브랜드가 ‘세라젬’이다. 세라젬은 2019년 카페형 직영 체험 매장 ‘세라젬 웰카페’를 선보였다. 웰카페는 음료 한 잔을 시키면 무료로 세라젬 안마의자를 체험해볼 수 있도록 공간을 꾸몄다.
회사 관계자는 “고가 제품이라 선뜻 구매하기 힘든데 그렇다고 체험해보겠다고 직접 나서기 꺼려 하는 고객이 많았다. 그래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자유롭게 체험하도록 했다. 현장 직원에게도 ‘손님이 요청하지 않는 이상 절대 먼저 영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게 했더니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고 소개했다. 세라젬이 척추온열 의료기기 ‘마스터 V6’ 구매 고객 19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55.1%가 구매 전 웰카페에서 1회 이상 직접 제품을 체험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덕에 세라젬 실적도 우상향곡선을 그렸다. 웰카페가 첫선을 보인 2019년 매출액은 636억원, 이듬해는 1851억원, 2021년에는 4964억원, 지난해는 연결 기준 매출 7501억원을 기록했다. 매년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 셈이다.
고객 접점을 달리해 성공한 사례는 또 있다.
유니클로코리아는 사회 이슈가 발생하자 발 빠르게 유통 채널을 재정비했다. 사고 싶지만 대놓고 구매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 오프라인 매장 대신 온라인몰을 강화한 것. 동시에 온라인에서 히트텍과 같은 히트 상품 할인 판매 등 이벤트를 강화하면서 결국 실적 반등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전략(2) 미리 누울 자리 마련해줘라
“코인 하세요?”
일상생활에서 투자 얘기가 나올 때 머뭇거리면서 꺼내는 말이다. ‘내 주변에는 코인 한다는 사람이 없는데 업비트는 왜 조 단위 이익을 내느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중년층 투자자도 많다.
오정석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샤이 고객은 보통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시장에서 많이 관찰된다”며 “소신과 선호도가 명확하나 반대편에 공격당하기 싫은 경우 조용히 독자적으로 움직이므로 기업 입장에서는 미리 알아서 이들의 ‘누울 자리’를 마련해주는 전략을 취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케이뱅크 성장세가 이를 증명한다고 소개했다.
2017년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 국내 최초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는 출범 이후 줄곧 적자였다. 하지만 2020년 여름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와 손잡고 업비트 실명계좌 발급을 시작하며 반등이 시작됐다. 업비트에서 원화를 입출금하려면 케이뱅크 계좌가 필수적이다. 마침 2021년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투자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케이뱅크 회원 수 역시 급증했다. 그 덕에 케이뱅크는 업비트 제휴 1년 후인 2021년, 연결 기준 순이익 224억원을 기록했다. 은행 설립 5년 만에 첫 흑자였다. 직전 해(2020년) 적자만 1054억원(영업손실)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환골탈태라 할 만하다.
지금까지 ‘코인 샤이 고객’ 효과는 강력하다. 지난해 말 기준 케이뱅크 전체 가입 고객 820만명 가운데 업비트와 연동된 이용자는 500만명, 케이뱅크를 통해 이뤄진 업비트 입출금 건수는 2년 9개월간 약 1억5000만건 이상이다.
20대 직장인 A씨는 “코인이 일종의 도박이라며 한심하게 보는 시각과 부정적인 인식이 있기 때문에 남들에게 공공연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가상자산 거래를 위해 케이뱅크를 자주 사용한다”고 말했다.
전략(3) ‘취향의 시대’ 마니아층 공략
샤이 고객은 은밀하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낸다. 또 그들 사이의 동질감과 만족감을 확인하는 데 익숙하다. 곽금주 교수는 “자신의 부와 재력을 과시하거나 트렌드에 맞춰 소비하며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소비자층이 있는 반면 다수와 차별화된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껴 스스로 샤이 집단에 속하는 소비자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취향에 맞는 소신 소비를 지향하는 샤이 고객은 구독경제 시장에서 쉽게 그 존재를 알아볼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요즘 누가 잡지 구독하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잡지 시장은 조용히 또 다양하게 성장하고 있다. 2016년 4931종이었던 잡지 종류가 2021년 5636종으로 늘어난 것만 봐도 잡지를 꾸준히 소비하는 고객이 있다는 방증이다.
전호겸 교수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정보를 큐레이팅(엄선)해주는 잡지는 결국 관련 제품 소비로 이어지게 되는 만큼 잡지 다변화 현상에서 기업이 신규 고객 발굴 기회를 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라젬 웰카페 안마의자 체험존(위). 케이뱅크는 가상자산 거래를 원하는 샤이 고객을 겨냥, 업비트와 손잡고 실명계좌 발급 사업을 해서 좋은 실적을 거뒀다(아래). (세라젬, 케이뱅크 제공)샤이 고객 우습게 보다가는
은밀하게 왔다가 조용히 사라진다
“적극적인 소비자는 서비스나 품질에 불만이 생기면 고객센터로 직접 항의하거나 소셜미디어(SNS), 심지어 언론 제보까지 서슴지 않는다. 샤이 고객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별 불평 없이 조용히 사라져버린다. 다만 다시 돌아오지도 않는다. 이런 경우 해당 기업은 자신들이 어떤 부분에서 관리 소홀로 그들을 잃었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할 수 있다.”
이강대 연세대 과학기술융합대학 교수 분석이다. 특히 새로움을 추구한다면서 종전 판매 방식을 없애거나 어려운 방향으로 변화시키면 이탈률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이 일시적으로 나빠지면 종전 판매 방식에 변화를 주려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다만 이때 최소한 샤이 고객을 염두에 두고 모든 채널을 닫기보다 일부 판매 채널을 살려두면서 샤이 고객의 구매 패턴을 매 순간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샤이 고객이 일반 고객에 비해 신경 쓸 점이 덜할 수 있지만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박정은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샤이 고객이 실은 매출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우군일 수 있는데 이들 성향을 무시하고 무작정 새로운 시도, 상품만 추구하려 하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샤이 고객을 대상으로 다크 패턴과 같은 알량한 수를 쓰다가는 ‘잠재 장기 고객’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 있다. 참고로 다크 패턴이란 소비자의 착각이나 실수를 유도하며 구매하게 만드는 판매 기법을 뜻한다.
노정석 대표는 “샤이 고객은 신중하게 선택하고 오랜 기간 거래하는 스타일인데 무료 체험으로 유혹, 체험 종료 일자를 알리지 않아 과금하게 하거나 첫 화면에서 싼 가격으로 유혹했는데 결제 단계에서 최종 가격이라며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등의 꼼수를 쓰면 잠재 우수 고객을 놓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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